▶ 회문산자연휴양림사무소 - 돌곶봉 - 문바위 - 시루바위 - 작은지붕 - 천근월굴 - 회문산 - 삼연봉 - 노령문 - 휴양림사무소.
* 주변의 산군에 비교 월등히 높은 산세로 인해 전망이 좋은 산이나, 비극의 역사를 간직한 때문인지, '산 사람의 산이 아닌 죽은 이들을 위한 산'이라느 말 때문인지 어두운 기운이 서린 회문산.
* 거리 및 소요시간 : 6.9km / 2시간52분 소요( 휴식 20분 포함)




사무소 입구에 오전 9시 이후에 휴양림운영 공지를 해서인지 08:30경 도착하니 매표소에 사람이 없어 휴양림사무소 아래 공터에 주차후 산행을 시작한다

회문산자연휴양림사무소를 지나자 마자 휴양림주차장이 나오고 잠시 더 진행하자 들곶봉 오름길이 나온다

많은 산객들이 찾는 회문산임에도 돌곶봉 오름길의 등로가 상당히 거칠다

오름길 중간에 최근에 조성 된 듯한 임도가 나타나면 좌측으로 진행한다

잠시후 등산로와 연결 되고

돌곶봉 까지 계속 되는 된비알 길을 오른다

돌곶봉(679m)

돌곶봉 주변은 잡목으로 조망이 막혀 다음 목적지인 문바위로 향한다

돌곶봉 내림길은 급비탈 길이나 짧게 이어진다

돌곶봉 이후 부드러운 능선길이 정상 까지 계속 된다

능선 진행중 신비로운 바위들이 가끔 나오는데 그부근엔 어김없이 무덤들이 존재한다, 회문산이 5대명당자리라는 유명세 때문인지 능선 진행중 나타나는 봉우리와 능선상에 많은 무덤들이 있다, 회문산은 우리나라에서 가장 많은 묘자리가 있는 산중 하나일 것이다
회문산 자락에 묻힌 무덤이 1000기 안팎으로 추산된다.
이렇게 많은 묘가 회문산을 덮은 데는 오래 전부터 회문산에 명당자리가 있다고 전해지면서다. 대표적인게 풍수지리의 대가인 홍성문 대사가 썼다고 전해지는 풍수가사 <회문산가> 다. 18세기 초 지은 것으로 추정되는 <회문산가> 는 6~7개 혈(穴)을 소개하면서 특히 오선위기(五仙圍碁)를 집중적으로 조명했다. ‘오선위기’에 묘를 쓰면 당대부터 발복하여 59대까지 갈 것이라는 예언을 곁들여서다. 이에 앞서 1800년대 활동한 분으로 알려진 일이승 스님은 산도(묫자리 그림)를 통해 회문산 오선위기와 함께 그 적합자로 배씨를 언급했다. 오선위기에 집착하는 풍수가 중에는 통일신라시대 풍수대가인 도선 국사까지 끌어들이기도 한다. 즉 도선의 풍수비기라는 <유산록> 순창편에 나오는 ‘선녀직금혈’(선녀가 베를 짜는 형상)을 일이승과 홍석문이 ‘오선위기’로 이름 붙였다는 것이다. 회문산 오선위기형 명당이 널리 회자된 계기는 증산교를 창시한 강증산에 의해서다. 강증산은 모악산과 회문산에서 ‘천지공사’(天地公事)가 펼쳐진다고 역설하면서 회문산에 24개 명당이 있고 그 중 오선위기형을 으뜸으로 꼽았다.
**홍성문대사 : 1850년대 순창, 임실, 정읍을 중심으로 활동
**일이승 : 1830년대에 호남을 중심으로 스승 일지승과 더불어 활동
출처 : 한국풍수연구원

문바위(시루봉, 692m)

지나온 돌곶봉

회문산과 섬진강 지류인 치천을 경계로 마주보고 있는 오후에 산행할 무직산

진행 방면

문바위와 근거리에 위치한 시루바위

헬기장을 지난다

임도를 가로질러 올라선다


작은지붕 오름길 중턱에 위치한 전망바위


전망바위에서 잠시 뒤 나오는 여근목


작은지붕(780m)

장군봉(782.6m)

회문산 오름길에 거쳐가는 천근월굴과 임병찬의병장묘

천근월굴
天根月窟 (천근월굴)
소강절
耳目聰明男子身(이목총명남자신) - 눈과 귀가 총명한 남자의 몸을
洪鈞賦與不爲貧(홍균부여부위빈) - 조물주께서 내게 주니 궁색하지 않네.
須探月窟方知物(수탐월굴방지물) - 月窟을 살펴본 후에야 만물이 드러나는 이치를 알 것이요,
未攝天根豈識人(미섭천근기식인) -天根을 밟지 못한다면 어찌 사람의 근원을 안다 하랴.
乾遇巽時觀月窟(건우손시관월굴) - 건괘가 손괘를 만날 때 월굴을 보고,
地逢雷處見天根(지봉뇌처견천근) - 지괘가 뢰괘를 만나는 곳에 천근을 볼수 있네.
天根月窟閑往來(천근월굴한왕래) - 천근과 월굴을 한가로이 왕래하니
三十六宮都是春(삼십육궁도시춘) - 삼십육궁이 모두 봄이라네.

천근월굴(天根月窟)
천근월굴의 암각자로 알려진 동초 김석곤(東樵 金晳坤:1874~1948)은 정읍의 옛땅 태인(泰仁)에서 태어난 학식이 높은 문인이었으나 일제강점기 암울했던 시절 일제의 어지러운 사회에 빌붙어 살기를 원치 않아 경승지를 찾아 다니며 암벽에 글을 새겨놓는 등 당대의 풍류객으로 유명했다고 한다.
정읍을 중심으로 전라북도 일원에 암벽에 새겨놓은 각자가 많은데 지리산 화개동천에도 2점이 전한다.

등산로 바로 옆에 보이는 임병찬의병장묘소
임병찬은 1906년 2월에 의병장 최익현(崔益鉉)과 더불어 전라북도 태인(泰仁)의 무성 서원(武城書院)에서 의병을 일으켜 초모(招募), 군량(軍糧) 및 병사 훈련 등의 책임을 맡아 홍주(洪州) 의병장 민종식(閔宗植)과 서로 연락을 맺으면서 태인, 정읍, 순창, 곡성 등 지역을 습격하여 관곡(官穀)을 취해 군량으로 삼고 진용(陣容)을 정비하였다. 1906년 6월에 순창에서 최익현과 함께 일본 헌병에게 체포되었다. 이어 일본 헌병에 의해 서울로 압송된 후 감금(監禁) 2년형을 선고받고 일본의 대마도로 유배되었다가 이듬해 1907년 1월에 귀국하였다. 1910년 국권을 상실한 후에는 은거하면서 재차 거의할 것을 도모하던 중 1912년 9월 고종 황제가 내린 밀조(密詔)에 따라 독립 의군부(獨立義軍府)를 조직하였다. 그리하여 널리 격문을 발송하고 동지를 초모하는 한편 그 조직을 확대시켜 12월에는 전라남북도 독립 의군부 순무 대장에 임명되었다. 임병찬은 1914년 2월 서울로 올라와 이명상(李明翔)·이인순(李寅淳) 등과 상의하여 독립 의군부를 전국적인 조직으로 확대시켜 대한 독립 의군부(大韓獨立義軍府)의 편제로 재조직하였다. 임병찬은 총사령이 되어 일제의 내각 총리 대신 총독 이하 모든 관헌에게 「국권 반환 요구서(國權返還要求書)」를 보내 일본의 한일 합방의 부당성을 천명하였을 뿐 아니라 외국에 대해서도 일제의 통치에 한국민이 불복(不服)하고 있음을 표명하는 한편 국민 대중에게 국권 회복의 의기를 일으켜 일시에 일본을 쫓아내려는 항일 의병 운동을 계획하였다. 그러나 1914년 5월 일본 경찰에 의해 그 계획이 사전에 발각되어 임병찬 이하 관련자들이 대거 체포당하여 실패하고 말았다. 임병찬은 체포된 후에 옥중에서 계획이 실패됨을 분개하고 3차례에 걸쳐 자살을 기도하였다. 1914년 6월 13일 거문도(巨文島)로 유배되어 옥고를 치르던 중 1916년 5월 23일[음력]에 유배지에서 사망 순국하였다.
[출처] 한국학중앙연구원 - 향토문화전자대전


큰지붕 회문산(837m)


하산지점 삼연봉

지나온 능선

순창의 또다른 명산 강천산과 추월산

장군봉 너머 내장산이 위치하는데 시계가 않좋아 흐릿하다

이제 하산길로 들어서 본다

초반은 완만하게

장군봉 갈림길을 지나선

급경사길로 한참을 내려선다


서어나무갈림길
후답자는 이곳에서 서어나무 방면으로 내려서는 걸 추천한다, 삼연봉으로의 하산길은 조망도 없을뿐더러 급비탈 하산길이 매우 불친절하기 때문이다. 수령 100년이 넘은 대단한 크기의 서어나무 관람 추천!

수령 100년의 회문산 서어나무 (퍼온사진 편집)

몇개의 고개마루를 넘어

임도길을 지난다


삼연봉(619m)

삼연봉 하산길 시작부터 휴양림계곡까지 급경사의 내림길이 이어진다

참나무류와 산죽이 태반인 회문산에 처음으로 작은 진달래군락을 만난다, 회문산은 어두운 기운이 많아선지 꽃을 거의 보지 못했다

내려갈수록 길은 더욱 가팔라지고 불친절해 진다

하산 끝지점 큰문턱바위를 지나고

철다리 아래 와폭으로 이루어진 구룡폭포

노령문을 나서고


휴양림 주차장 앞의 돌탑지대

회문산자연휴양림사무소에서 원점회귀 산행종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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